해륜 : 솔직히 이시은 당신도, 나 아닌 다른 남자도 만나 보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.

시은 : 다물어, 고양이 쥐 생각해?

해륜   해륜 : 사람 심리가, 그동안 수많은 PD들하고 일했는데 남자로 보인 상대 없었어? 나만 죽을 놈 됐는데, 그래, 죽일 놈 맞아. 근데 내 입장에서 한번 이해해 보려고 노력이라도 해 주면 안 되냐고.

시은 : 노력?

해륜   해륜 : 평생 잘하다가 한 번 실수했다고 향기 내 가슴에 비수 박아 대는 거 봤지? 그럼 이제까지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내가 해 온 건?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. 당신만 고생한 거 아니고. 나 정말 이번 일만 아니면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어. 고의도 아니었고.

시은 : 조용히 짐 싸 나가. 내일이든 모레든 만나 서류 접수하고.

해륜 : 이렇게 내쫓기듯이?

시은 : 내쫓기는 거 맞아. 속으로는 좋지? 붙잡고 매달리지들 않으니.

해륜 : 고맙고 감사해. 근데 인간적으로 헤어질 수도 있잖아.

시은   시은 : 덕담 하면서? 축언하면서? 아까 향기 덕담으로는 부족해? 더 이상 어떻게 더 인간적으로? 향기가 막말이라도 했어? 원망 퍼부었어?

해륜 : 막말, 원망보다 더한 비수 박아 댔어.

시은   시은 : 그래서, 향기 불러다 사과시켜? ‘아빠 가슴 아프단다, 풀어 드려라?’. 애들 가슴엔 솜사탕 박혔을까? 박해륜은 원인 제공이라도 했지. 애들이 무슨 잘못 있는데? 잘못한 거 없이 세상 착한 아들딸이 왜 버림받고 상처받아야 하는데? 오늘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멀쩡해 보이지만, 교통사고보다 더한 후유증 올 거야. 마음의 상처는 약도 없으니까.

해륜 : 나만 죽일 놈이야? 세상 남자 다 거기서 거기지.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들 못 봐?

시은 : 뭐 눈엔 뭐만 보여? 인터넷에 쓰레기들 기사만 올라와? 더없이 올곧고 반듯한 가장들 기사는?

해륜   해륜 : 이면은 몰라. 겉으로는 반듯해 보여도, 동전 양면처럼, 하늘의 태양, 달처럼, 검은 고양이, 흰 고양이처럼, 사람 다 두마음 있어.

 시은 : 그런 말로 합리화 말고.

해륜   해륜 : 내가 지금까지 밥을 굶겼어, 월급을 탕진했어? 당신이나 애들 학대를 했어? 단 한 번 허물이고 잘못인데.

시은   시은 : 그렇게 생각해? 단 한 번 허물이라고? 단 한 번 그 여자랑 잤어? 단 한 번 자고 이혼 요구해? 훌륭하신 교수님, 어서 짐 싸세요, 마저.

해륜 : 비아냥 거리지마.

시은   시은 : 자식이 고 몇 마디 했다고 억울하면, 향기나 우람이 속은 어떻겠어. 생판 모르는 남 택해서 자기들 떠나겠다는 아빠. 향기, 언성 하나 안 높이고, 눈 한 번 안 부릅떴어. 마지막으로라도 양심 좀 있어 봐.